이레셔널 맨 영화 리뷰 선택, 윤리, 허무

다시 보게 된 계기와 이상하게 남는 불편함
서른이 넘고 회사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예전에는 단순히 철학적인 영화라고 생각했던 작품들이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레셔널 맨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조금 특이한 이야기라고 넘겼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보니 오히려 현실적인 불편함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무기력과 권태에 빠진 주인공의 상태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업무와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일상 속에서, 나 역시 가끔은 내가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실존적 공허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미국 심리학회에서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가 우울과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에이브의 모습은 극단적이지만, 그 출발점 자체는 생각보다 현실과 가까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단순히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상태를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위험한 착각
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했던 지점은 살인이 어떤 논리적 결론처럼 제시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에이브는 자신의 행동을 정의로운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부당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제거하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아무런 사적 이익을 얻지 않는다는 논리는 겉으로 보면 꽤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하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건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기 합리화에 빠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이 도덕적 판단에서도 합리적이기보다 감정과 상황에 따라 판단을 왜곡한다고 설명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에서도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사고를 구성한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건 회사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작은 규칙 위반이나 편법을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포장하는 순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를 찾았다고 믿는 순간의 위험성
에이브는 살인을 저지른 이후 오히려 삶의 활력을 되찾습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아이러니하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그 의미가 반드시 올바른 방향일 필요는 없다는 점입니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의미 구성 과정이라고 설명하는데, 개인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스스로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방향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순간에도 스스로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영화 속 에이브는 극단적인 사례지만, 그 감정의 흐름 자체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한계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에이브의 선택은 점점 더 무너집니다. 처음에는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과 불안이 개입되면서 균열이 생깁니다. 특히 자신을 의심하는 시선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범죄심리학에서는 범죄 이후의 불안과 긴장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미국 범죄학회 연구에서도 범죄자는 사건 이후 점점 비합리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결말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결국 인간은 완벽하게 계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논리로 시작한 행동이라도, 결국 감정과 두려움이 개입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회사에서든 일상에서든 우리는 종종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믿지만, 그 선택이 정말 옳은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는 그 지점을 날카롭게 건드리는 작품이었습니다.